부엌에서 요리할 때 기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재료를 익히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기름은 음식의 맛과 향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특히 파기름과 고추기름은 요리의 풍미를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최근 5년 전부터 백종원 선생님께서 요리하실 때 파기름과 고추기름을 많이 사용하셔서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름 속에 어떤 화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오늘은 파기름과 고추기름 속의 화학 물질, 추출 원리, 그리고 올바른 기름 선택까지 깊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1. 파와 고추 속 화학물질의 특징
파의 핵심 향미 성분은 황 화합물(sulfur compounds)입니다. 대표적으로 다이알릴 설파이드(Diallyl sulfide), 다이알릴 디설파이드(Diallyl disulfide) 등이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파를 가열하면 분자 내 이황화 결합이 끊어지면서 강한 향을 내게 됩니다. 이황화결합은 '글루텐-1' 게시물에서 언급했었죠.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입니다.
이 분자 이름에 '알릴'은 마늘의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처럼 마늘, 파, 양파 등의 백합과 식물 속에서 많이 생성되는 물질입니다. 알싸하면서도 감칠맛을 내는 이 물질은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살충효과도 있으며, 항암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습니다.
황 화합물은 분자구조에서 볼 수 있듯 탄소화합물이 많이 결합하여 상대적으로 **지용성(기름에 잘 녹음)** 소수성 이므로, 기름에 서서히 녹아들어 요리에 깊은 풍미를 더해줍니다.
고추기름에서는 캡사이시노이드(Capsaicinoids) 계열의 화합물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출처: 위키백과
대표적으로 **캡사이신(Capsaicin)**과 **디하이드로캡사이신(Dihydrocapsaicin)**이 있으며, 이 성분들은 매운맛을 담당하는 물질이죠. 캡사이시노이드는 분자구조에서 보이듯 대부분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어 물에는 거의 녹지 않지만, 기름에는 쉽게 녹는 특징을 가집니다. 즉, 기름을 활용하면 고추의 매운맛과 향을 효과적으로 추출할 수 있습니다.
2. 파기름과 고추기름의 추출 원리
파와 고추의 향미 성분이 기름으로 녹아드는 과정은 단순한 물리적 혼합이 아니라, 화학적 성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먼저, **유사한 성질끼리 잘 섞인다 (Like dissolves like)**라는 화학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말로 "유유상종"에서 '유'가 기름유라서 기름은 기름끼리 상종한다라는 말 아시나요??(조크입니다)
간만에 하는 조크 죄송합니다.
황 화합물과 캡사이시노이드는 비극성 혹은 약한 극성을 가진 분자이기 때문에, 극성이 없는 **기름(비극성 용매)**과 잘 섞이게 됩니다. 따라서 물로는 매운맛을 효과적으로 추출할 수 없지만, 기름을 사용하면 쉽게 녹아나오는 것이죠.
참고로 책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보면
사람의 채취를 얻기 위해 죽은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통 향기를 내는 물질들이 파나 고추처럼 비극성 물질들이 많기 때문에 기름으로 추출하는 것이죠. Like dissolves like 꼭 기억하세요! 기름은 기름끼리 물은 물끼리
추출 과정에서는 온도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너무 낮은 온도에서는 향미 성분이 기름 속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않습니다.
너무 높은 온도에서는 향미 성분이 휘발되거나, 고온에서 분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파기름과 고추기름을 만들 때는 120~150°C 정도의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고추기름을 만들 때는 180°C를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너무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캡사이시노이드가 파괴되고, 고추 속 탄수화물이 타면서 쓴맛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3. 제작시 기름 선택이 중요한 이유 – 포화지방 vs 불포화지방
파기름과 고추기름을 만들 때 어떤 기름을 사용할지 고민해 본 적이 있나요? 기름의 종류에 따라 향미 성분이 기름에 녹아드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포화지방이 많은 기름(코코넛오일, 버터, 라드 등)을 사용할 경우
포화지방은 탄소-탄소 단일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 분자가 직선형 구조를 가지며, 분자들 간 밀착도가 높아 유동성이 낮습니다.
포화지방의 분자구조
향미 성분이 기름 속으로 잘 퍼지지 않고, 표면에서만 부분적으로 녹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향이 고르게 퍼지지 않고 약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기름과 고추기름을 만들 때 필요한 온도를 견디기에는 불포화지방이 많은 기름보다 훨씬 유용하죠.
불포화지방이 많은 기름(올리브유, 해바라기씨유, 카놀라유 등)을 사용할 경우
불포화지방은 탄소-탄소 이중결합(C=C)이 있어 분자 구조가 휘어져 있으며, 분자 간 거리가 멀어 유동성이 높습니다.
불포화지방의 분자구조
따라서 향미 성분이 기름 속에서 더 잘 확산되고, 고르게 퍼지게 됩니다.
불포화지방이 많은 기름일수록 향이 깊고 균일하게 배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불포화지방이 많은 기름은 산화되기 쉬운 단점이 있습니다. 저번 게시물에서 봤듯이 불포화지방은 산소에 의해 산패될 수 있고, 외부 자극에 의해 이중결합이 풀리면서 불필요한 물질이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즉, 장시간 고온에서 가열하면 산패되거나 좋지 않은 냄새가 날 수 있으므로,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기보다 적당한 양을 만들어 신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게시물의 결론입니다. 고추와 파에서 나타나는 향은 소수성 또는 비극성이며, 물보다는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름을 통해 추출해야 합니다. 또한 기름 중에서도 포화지방이 많은 기름보다는 불포화지방이 많은 기름(올리브유 카놀라유 등)을 사용해야 더 많은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불포화지방이 많으면 산패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적은 양을 자주 만들어 신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로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는 산패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찌꺼기는 꼭 제거해주세요.
파기름과 고추기름의 깊은 풍미는 단순한 요리 기술이 아니라, 화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서 완성됩니다. 향미 성분의 화학적 성질을 알고, 적절한 온도와 기름을 선택하면 더욱 풍부하고 균형 잡힌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다음번에 파기름이나 고추기름을 만들 때는 어떤 기름을 사용할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과학을 알면 요리가 더 맛있어집니다!